소비자 현혹하는 글루텐 프리(gluten-free)식품 – 조선일보 김성윤 기자

[칼럼] 소비자 현혹하는 글루텐 프리(gluten-free)식품 – 조선일보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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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소비자 현혹하는 글루텐 프리(gluten-free)식품- 조선일보 김성윤 기자

빵·국수 맛 내는 글루텐 꺼리는 건 소화불량과 민감증세 유발한 탓.
이색 제품 내야 하는 식품업계가 공포 마케팅으로 무첨가 과장해.
뺀 만큼 다른 첨가물 추가하는 법…  새 영양학설은 검증되길 기다려야

 

김성윤 문화부 기자 사진
<조선일보 김성윤 기자의 ‘맛 세상’칼럼입니다>(2014년 10월 2일자)
저희 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의 최근 글루텐 심포지엄 내용을 반영해 작성된 칼럼이어서 인용합니다.

얼마 전 출근길에 시내버스 옆구리에 붙은 광고를 보았다.

험악하지만 익살스러운 표정의 여성 코미디언이 금방이라도 때릴 듯 오른손을 뒤로 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다음과 같은 카피가 인쇄돼 있었다.

“글루텐프리! 아직도 몰라? 귓방망이 짝! 짝!”

글루텐(gluten)이 들어간 음식은 몸에 이롭지 않으며, 그걸 여태 모른다면 귓방망이를 얻어맞아야 한다고
코믹하게 풀어낸 광고다.

그러면서 글루텐이 들어가지 않은 식품, 즉 글루텐프리(gluten-free) 제품을 사 먹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
있다.

글루텐이 뺨을 맞아야 할 정도로 해로웠던가?
미식가(美食家) 입장에서 글루텐은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한 고마운 존재다.
밀에는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이라는 두 단백질이 들어 있다.

밀가루를 반죽하면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이 만나 단단한 그물 구조의 단백질
복합체를 형성한다. 이것이 글루텐이다.

글루텐이 아니었다면 쫄깃하고 매끄러운 면발과 폭신하고 부드러운 빵을 즐길 수 없다.

글루텐이 국수를 뽑을 때 끊어지지 않게 잡아주고, 구울 때 생기는 기체(이산화탄소와 에탄올)가 빠져나가지 않게 가둔다.

메밀이나 쌀, 옥수수는 밀만큼 글루텐이 많지 않다.

그래서 밀처럼 국수나 빵을 만들기 어렵다.

밀이 옥수수·보리·호밀보다 재배하기 어렵고, 쌀보다 같은 면적당 생산되는 칼로리가 낮은데도 세계 3대 작물에 낄 수 있는 건 글루텐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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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글루텐이 기피 대상이 된 건 ‘글루텐 민감성’ 증상 때문이다.

글루텐 소화흡수율이 낮아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소화기질환을 비롯해 자가면역질환·천식·비염·두통 등 각종 증상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심한 경우를 셀리악병(病)이라고 하는데, 두통·근육통·관절통부터 우울증·골다공증·불임·림프종 등 다양한 질환을 유발하는 심각한 병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

9월 29일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최명규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셀리악병은 유전적 요인이 작용하는 병인데 셀리악병 환자의 95%가 보유한 HLA-DQ2 유전자를 지닌 한국인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셀리악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백인은 30~40% 보유하고 있지만 동양인이나
흑인에게선 찾기 어렵다.

그럼 왜 빵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는 사람이 한국에 많을까.

그건 글루텐보다 현대화된 제빵 기술 탓일지 모른다.

과거에는 빵을 천연효모로 만들었다. 요즘은 대개 이스트를 사용한다.

환경운동가이자 음식작가인 마이클 폴란은 ‘요리를 욕망하다’란 저서에서

이스트는 빵을 부풀리는 데 필요한 효모 하나뿐이지만, 천연효모는 효모뿐 아니라 수십 가지 세균이 섞여 있는 상태라고 했다.

게다가 천연효모를 이용한 발효는 천천히 이뤄진다.깊은 풍미를 내는 빵이 만들어진다.

반면 이스트 발효는 시간이 짧아 빵을 대량생산하기 쉽고 경제성이 높다.

대신 풍미가 떨어진다. 이를 보충하려고 첨가물을 추가한다.

폴란은 “발효종(천연효모) 발효는 글루텐을 분해하여 소화를 돕기도 한다”며
“어떤 연구자들은 글루텐 불내증과 셀리악병의 증가 원인이 현대의 빵들이 긴
발효 시간을 거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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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계에서 이걸 몰라서 글루텐프리 제품을 대대적으로 내놓는 건 아닐 것이다.

식품업체는 색다른 제품을 끊임없이 내놓아야 한다.

약간 낯설면서도 이국적이고 서구적인, 그래서 세련된 느낌의 ‘글루텐 프리’라는 단어가 매력적이었을 듯하다.

요즘 유행인 ‘무첨가 마케팅’에도 딱 맞는다.

소비자들도 무첨가 제품을 신뢰하고 안전하게 생각한다.

소비자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공포 마케팅’이라 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일부 기업이 무첨가 마케팅을 벌이지만 실제로는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첨가물 대신 소비자가 잘 모르는 대체 첨가물을 넣는 ‘꼼수’를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커피업계의 ‘카세인나트륨 논쟁’이 대표적이다.

우유는 지방·단백질·젖당으로 구성된다. 이 중 유단백질은 카세인 80%와 유청단백질 20%다.

카세인나트륨은 카세인을 분리해 나트륨을 결합한 것으로 인체에 해가 없다.

하지만 한 기업이 자사의 커피믹스가 크림에서 카세인 나트륨을 빼고 무지방
우유를 넣었다고 선전했다.

카세인나트륨을 잘 모르는 소비자들이 막연한 불안감을 갖게 됐다.

이 기업의 커피믹스는 2위로 급부상했다.

무지방 우유에도 당연히 카세인이 들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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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에서 특정 성분을 빼면 맛도 빠진다.

소비자는 몸에 좋아도 맛이 없으면 집어 들지 않는다.

다른 첨가물로 부족함을 채울 수밖에 없다.

과거 저지방 식품은 지방을 줄이는 대신 설탕과 소금을 더 넣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6월 글루텐프리 식품이 글루텐 성분만 낮췄을 뿐 비타민이나 섬유질처럼 이로운 영양소는 부족하고 탄수화물이나 당분은 일반 제품보다 높다고 보도했다.

우리는 식품회사의 집요한 공세로부터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야 할까.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의 저자 하비 리벤스테인은 “새로운 영양학적 발견이 뉴스로 나오면 일단 충분히 기다려보라”고 충고한다.

마이클 폴란은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되 과식하지 말고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라”고 한다. 뺨 맞을 소리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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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www.kofrum.com)
#전화:  02-6300-2850(2852), 070-4710-8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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